평소 입이 자주 마르는 직장인 윤 모(35·서울 양천구 신월동) 씨는 최근 들어 밤을 새운 뒤면 잇몸이 퉁퉁 부어오른 듯한 느낌이 잦아졌다. 잇몸이 불편해 찾은 치과에선 “혀의 양쪽 가장자리에 잇자국이 뚜렷하다”며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인 만큼 심리검사를 해 보자”고 권했다. ‘신경이 예민하고 마음의 안정이 안 된다’, ‘기운이 없고 침체된 기분이다’, ‘장래 희망이 없는 것 같다’ 등 90개 문항(5점 기준)으로 된 심리검사에서 윤 씨는 편집증과 강박증 영역에서 80점을 넘었다. 60점 정도가 정상.》 잇몸질환이 갑자기 심해진 환자 가운데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잇몸질환 구치 턱관절이상 이갈이 등으로 치과를 찾는 환자에게 간이인성진단검사, 다면인성검사(MMPI)와 같은 심리검사를 하는 치과 병원도 늘고 있다.
▽구강, 스트레스에 취약=잇몸질환과 같은 구강 질환은 세균이 주요 원인.
그러나 경희대 치대 구강내과 홍정표 교수는 “구강 질환이 있건 없건 구강 안의 세균의 양과 종류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세균만으로 잇몸질환을 설명하기는 어려우며 스트레스가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설명이다.
서울대 치대 치주과 구영 교수도 “잇몸 질환은 성인의 약 80%가 가지고 있으나 평상시 잠복하고 있다 스트레스로 면역기능이 떨어지면 염증반응이 커지면서 나타나기 쉽다”며 “수험생, 실직자, 파산자 중에서 갑자기 잇몸질환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경희대 치대 홍 교수는 스트레스가 면역물질을 갖고 있는 침의 분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스트레스가 침 분비를 관장하는 자율신경을 방해한다는 것.
홍 교수가 대한구강내과학회지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침샘의 기능을 떨어뜨리거나 심할 경우 파괴할 수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용 쥐를 가두고 ‘급성 스트레스’를 준 결과 사흘째부터 침샘이 붕괴되기 시작해 5일째엔 완전히 파괴됐다. 또 잠을 재우지 않고 불빛을 비추는 등 ‘만성 스트레스’에는 3주째부터 침샘 세포의 파괴가 서서히 진행됐다.
경희대 치대 홍 교수는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는 곳은 구강”이라며 “후천적으로 면역력이 결핍되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의 경우 구강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관찰된다”고 말했다.
▽방치하면 치주염 생길 수도=잇몸질환이 심해졌다면 우선 스트레스 피로 등 자신의 면역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 잇몸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세균을 줄이려면 플라크(입 안의 음식물과 세균이 결합해 생기는 치태)와 플라크가 딱딱하게 석회화한 치석을 꾸준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바른 칫솔질이 플라크를 없애는 기본이지만 칫솔질만으로는 완전히 플라크를 제거할 수 없는 만큼 정기적인 치석 제거(스케일링)는 잇몸질환의 예방을 위해 필수적이다.
서울대 치대 구 교수는 “스케일링을 받지 않은 환자의 경우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스케일링을 받은 집단에 비해 잇몸 뼈(치주골)의 파괴 정도는 3배, 속도는 4배나 빠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잇몸질환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잇몸에 염증이 생기는 치은염뿐 아니라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잇몸 뼈에까지 염증이 생기는 치주염이 생길 수 있다.
치은염은 스케일링만으로도 어느 정도 치료가 되지만 치주염이 생기면 잇몸을 째고 염증을 긁어내는 치주소파술을 받아야 한다. 또 치주염이 치아 뿌리 부근까지 퍼지면 이를 뽑아야 할 경우도 있다.
구 교수는 “잇몸에 염증이 있어도 이와 잇몸 사이의 공간을 통해 염증 반응물질이 서서히 빠져나간다”며 “증상이 완만히 진행되기 때문에 방치하다 치아를 잃는 경우도 많다”고 조언했다. ⓒ 동아일보 |